한동안 머리가 너무 길게 자라 답답했었는데 어제 드디어 머리를 깎았습니다. 집 앞 미장원에서요. 제가 8월 초에 프랑스에 왔으니까 이제 만 4개월이 조금 넘었네요.
베르사유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 저기 미장원(프랑스어로 coiffure 꾸와퓌르라고 합니다)이 굉장히 많습니다. 거의 골목마다 하나씩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현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프랑스인들이 집에서는 머리를 잘 안 감고 2 ~ 3주에 한번씩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감기 때문이라고... 그래서인지 남자의 경우 보통 "Shampooing + Coupe (꾸쁘: 자른다는 뜻) + Coiffure (이건 헤어스타일링을 말하는 듯)" 해서 €20 전후 정도 요금을 받는 것 같더군요.
그동안 답답하면서도 그리고 길거리의 수많은 미장원을 보면서도 선뜻 들어가기를 주저하게 했던 건 첫째로 뭐라고 말해야 머리를 깎아줄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고 (암만 생각해봐도 미장원에서 영어가 통할 것 같지는 않은데 설사 통한다고 해도 막상 영어로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이것도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고) 둘째는 과연 프랑스인이 동양인인 내 머리를 제대로 깎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이건 어디선가 백인과 동양인 그리고 아프리칸이 각각 머리결이 전혀 달라서 백인 머리 잘 깎는 애들이 동양인 머리결에는 쩔쩔 맨다더라 이런 (근거가 의심스러운) 얘기를 누구한테인가 들어서이기도 하고. 하여간에 그래서 4개월 동안이나 머리를 방치해 뒀었는데 이젠 도저히 안 되겠더라구요. 슬슬 머리가 뒤꽁지를 묶어도 될만큼 자라서 이왕 이렇게 된거 개성있는 외모로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으나 이제 첫학기 지나고 둘째 학기부터는 슬슬 본격적으로 job search를 시작해야 할 텐데 굳이 도움이 안될 것 같아서 (특이한 외모는상대로 하여금 뭔가 특별한 기대를 하게 만들기 때문에... 내가 굳이 특별히 튀고 싶지 않은 다음에야 피하는게 낫겠죠 아무래도) 파리에 가면 한인 미장원이 두어 군데 있기는 한데 머리 깎으러 거기까지 나가려니 차비랑 시간도 아깝고.
그래서 어제(화요일) 오후 수업이 비는 틈을 타서, 집 앞에 있는 가장 가까운 미장원의 문을 열었습니다. 전형적인 프랑스 스타일의 예쁜 아가씨인 미용사가 머리를 깎아주는데, (근데 프랑스 여자치고는 좀 뚱뚱하더군요) 어 생각보다 굉장히 잘 하더라구요. 설렁설렁 깎는 것 같아 좀 불안했는데, 깎고 나니까 꽤나 자연스럽고 마음에 듭니다. 우리나라 미장원에서는 일단 깎고 나서 드라이로 모양을 만드는데 공을 많이 들이는데 비해, 여기서는 드라이 이전에 커트 단계에서 최대한 완성을 보는 걸 목표로 하는 듯합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잘 나간다는 미용사들 전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자랑하는데 그들이 비싼 돈내고 미용 기술 배워 온 프랑스에서 직접 머리를 깎으면서 너무 걱정이 심했던 것 아닌가 싶더라구요.
그리고 정작 머리 깎는데는 별로 많은 대화가 필요하지 않더군요... 그냥 많이 짧게 할거냐 조금 짧게 할거냐 (un peu court? 엉뿌 꾸?) 정도, 귀가 드러나게 할거냐 말거냐는 oreilles 오헤이 어쩌구 하면서 손짓으로 조금 표시해 주면 되고, 머리 깎는 도중 간간히 눈이 마주치면 쎄봉(C'est bon: 좋아요)이나 트헤비엉(très bien: 아주 좋아요) 정도 추임새 넣어주고. 게다가 어제는 화요일이라 원래 €19인 요금을 €17로 할인까지! 머리도 만족스럽고 기분도 좋고 해서, 돈내고 나오면서 나 여기 바로 건너 편에 사는데 프랑스 온지 4개월 됐는데 지금 처음 머리 깎는 거다, 라고 더듬더듬 프랑스어로 얘기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뭐 상대방이 제대로 알아 들었는지는...)
외국 생활에 적응한다는 게, 조금씩 장막을 걷어 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에요.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깎는다든지 은행에서 돈을 찾는 다든지 하는, 아주 일상적인 것조차 직접 경헙해 보기 전에는 왠지 두렵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고 하는데,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니고 한번 해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아주 편해지거든요. 결국 용기를 내어 직접 부딪혀서 체험해 보는 게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베르사유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출처: http://a21.idata.over-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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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