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 전이라 그런지, 요새 나오는 미국 영화들을 보면 현란한 액션과 특수효과로 볼 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들 보다는 다양한 인간의 내면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깊이 있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영화팬들을 설레게 한 작품이 미키 루크의 "더 레슬러"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인데요. 두 영화의 공통점은 왕년의 스타들이 팬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전성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선보임으로써 보는 사람의 심상을 자극한다는 점이죠.
지난 주말에는 "더 레슬러"를, 이번 주말에는 "그랜 토리노"를 봤는데요. 영화 자체로서는 "그랜 토리노"가 더 재밌고 잘 만들어졌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더 레슬러"에서 보여준 미키 루크의 연기 또한 대단한 것이었죠. 뭐 여기에 대해서는 워낙에 많은 분들이 좋은 감상평을 적어 주신 관계로 이제 와서 뒷북을 칠 필요는 없을 듯하고, 다만 영화를 보는 동안 떠오른, 영화 외적인 심상 세가지를 적어 볼까 합니다.
(영화 관련 사진의 출처는 모두 http://www.cine21.com입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듯, 이 영화는 미키 루크의, 미키 루크에 의한, 미키 루크를 위한 영화입니다. 영화배우 미키 루크라는 자연인과 이 영화의 주인공인 랜디는 도저히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랜디가 상처 입는 장면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배우 미키 루크의 상처를 떠올리게 되고, 그러기에 더욱 그의 고통에 감정 이입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진출처: http://www.cine21.com
이는 감독의 촬영 의도에도 선연히 드러나는데요. 첫 장면부터 시작하여 상당히 많은 장면에서, 카메라는 랜디의 바로 뒤를 따라 가며 랜디가 보는 장면들을 그대로 보여 주고, 그의 거친 숨소리라든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들을 날것 그대로 들려 줍니다. 관객들이 랜디에게 직접 감정 이입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바로 옆에서 그를 느낄 수 있도록 의도한 연출이라 생각되네요.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시퀀스(장면)들에 랜디는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아무리 주인공이라 해도 이런 식의 연출은 흔치는 않죠.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단 한 장면, 랜디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랜디와 유일하게 마음이 통하는, 동네 스트립바의 댄서인 캐시디가 메인으로 나오는 장면인데요. 랜디가 링 위에서 쓰러져 죽을 각오를 하고 마지막으로 경기에 출전하러 떠난 후, 캐시디는 그를 말리러 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바에서 춤을 춥니다.


사진출처: http://www.cine21.com
랜디 외에는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퇴물 스트리퍼인 캐시디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늙어 버린 육체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에로티시즘을 쥐어짜내기 위해 힘겹게 봉춤을 추는 장면은, 반 고호의 초기 습작으로 남아 있는 "슬픔(Sorrow)"이라는 그림을 계속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림출처: www.vangoghgallery.com

그림출처: www.chrislee.org.uk
"슬픔"은 고호의 작품 중 유일한 누드화로 알려진 (동일 주제의) 일련의 작품들의 제목입니다. 고호는 애초에 성직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1880년 경에 이를 포기하고 화가가 되기를 결심하면서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살기 시작하는데요. 이때 클라시나 호르니크 시엔이라는 창녀를 만나 동거를 합니다. 시엔은 딸 하나가 있었고 고호와 살기 시작할 당시 이미 임신 중이었습니다. 평생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종교적 연민으로 고뇌하고 괴로워 했던 고호가 그녀와 함께 살았던 건 비참한 상황에 빠져 있던 그녀를 어떻게든 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요. 하지만 자신 역시 돈 한푼 못 버는 가난한 화가 지망생이었던 고호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고, 그런 자신의 무력감이 그림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누드화라고는 하지만 일체의 에로티시즘이 배제된, 모델과 화가의 슬픔과 고통이 단순한 선에 절절히 살아 있는 이 그림이, "늙은 창녀"와 다름없는 캐시디의 모습 위로 계속 겹쳐 보이더군요. (캐시디 역할을 맡은 배우인 마리사 토메이는 저도 예전부터 좋아하던 배우입니다.) 그림 아래에 조그맣게 씌어 있는 문구는 "어찌하여 이 땅 위에 한 여인이 홀로 버려진 채 있는가?"라는 뜻으로 미슐레의 글을 인용한 것이라고 하네요.

사진출처: www.sejlakameric.com
위의 사진은 보스니아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 중인 Šejla Kamerić이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입니다. 이 사진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고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페이소스를 모방하려는 것이었다면 더 늙고 지쳐 보이는 모델을 썼어야 했던 것 아닐까 싶네요. 그렇다고 고호의 작품을 패로디해서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고자 하는 거였더라면, 좀더 몸매와 가슴이 예쁜 모델을 썼어야 했을 것 같구요.
Posted by vincent



